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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담담한 한강

지난 4월 25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소설가 한강을 만났다. 장편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심에 오른 소회를 묻는 인터뷰였다. 먼저 도착한 한 작가가 취재기자와 함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한 작가가 빙긋이 웃었다. 여느 때처럼 눈이 살짝 감기는 빙긋 웃음이었다. 이 웃음은 한 작가 특유의 표정인데 나름 반가움의 표시다. 그러면서 예의 갖춘 인사를 건넸다. 다섯 번째인데도 참 한결같았다. 사실 내색을 안 했지만 인사를 건네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백하자면 사진기자 입장에선 한 작가의 한결같음이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예의 바름, 부드러운 미소, 차분한 말씨, 단정한 자세,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다. 하나 이 모두 사진으로 표현해야 할 메시지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광주를 다룬 장편 『소년이 간다』를 이야기하면서 부드럽고 예의 바른 미소의 사진이라면 어울리지 않는다. 사진엔 그것을 넘어서는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 게다가 한 작가는 매번 BB크림만 살짝 바른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난다. 그만큼 자기 과시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취재기자의 질문에 군더더기 없이 할 말만 한다. 그것도 한참을 곱씹은 후에야 대답이 나온다. 이때의 시선은 대개 테이블이나 땅바닥을 향해 있다. 우스개를 건네도 '네'라는 대답과 빙긋이 웃는 게 전부다. 2015년 '황순원 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한번은 작정하고 한 작가를 웃겼다. 손으로 입을 막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자기 과시도 없는 데다 좀처럼 빈틈 보이지 않는 한 작가, 어떨 땐 벽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다섯 번째 만남, 한결같은 인사에 내색도 못 하고 호흡을 가다듬은 이유였다. 취재기자가 축하를 건네며 심경을 물었다. "너무 좋다거나 그렇지는 않네요. 평화롭게 살다가 지난 소설이 다시 회자되고 계속 전화벨이 울리는 상황이 낯설었습니다. 더구나 대중적이지도 않고 조용히 내 글만 쓰던 사람에게 한국 문학을 묻는 게 당황스럽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피하고 숨어 있었다고 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설명했다. "2005년 이상문학상을 받아 작품이 많이 읽혀졌어요. 그런데 탐미주의적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당시 책 광고 문구도 선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작가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오해를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래 묵혀둔 속내인데도 말투는 차분했고 표정은 담담했다. 당신의 작품이 다르게 읽히는 오해, 작가로서 오래 묵은 상처였다. '조용히 글만 쓰던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한 토로로 읽혔다. 지난 16일, 한 작가의 수상 소식을 접했다. 그 다음 날 취재기자가 한국의 독자에게 한 말 해달라고 한 작가에게 전화로 요청했다. 한 작가의 답은 이랬다. "아유, 그런 말 못해요. 너무 떠들썩하게 하지 말고 조용히 다뤄 주세요. 부담스러워 한국에 못 돌아갈 것 같아요." 그 답에서 한결같은 빙긋 웃음이 스쳤다. 지난 19일 한 작가가 귀국을 했다. 예정보다 하루 앞당긴 귀국이었다. 한 작가의 에이전트도 몰랐다고 했다. 언론의 주목을 따돌린 귀국, '한강다움'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2016-05-22

한강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수상…한국 문학, 마침내 세계정상 반열

한국문학이 세계정상의 반열에 올랐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번번이 실패하여 갈증을 호소하던 한국문단에 맨부커상 수상이라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소설가 한강(45)씨는 16일 세계 3대 문학상이자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선정작인 채식주의자는 표제작인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엮은 소설집이다. '채식주의자' 내용은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가려 하는 주인공 영혜가 결국엔 나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 형부, 언니의 시각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개인에 대한 사회의 폭력을 그려낸다.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매해 시상으로 새롭게 개편되는 만큼 쟁쟁한 최종후보작들이 올라왔다. 올해는 2006년 노벨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중국 소설가 옌렌커, 앙골라의 호세 아두아르도 아구아루사,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테, 오스트리아의 로버트 시탈러가 후보에 올랐었다. 소설을 번역한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선정위원회도 "21살에 처음 한국어를 배운 28살의 번역가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며 번역을 극찬했다.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스미스는 영국에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직접 한국어를 배웠다. 선정위 "만장일치 선택" 선정위원회는 "한국의 오늘을 그리지만 동시에 부끄러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는 것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다"라고 채식주의자를 소개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인디펜던트지의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톤킨은 "심사위원 5명은 채식주의자를 만장일치로 선택했다. 짧지만 강렬하고 독자들의 뇌리에 한참 남을만큼 불편한 구석도 있다. 문체 또한 시적이면서도 날카롭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에 더해 가디언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매우 강력한 소설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 한류' 시발점"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에 한국 문학계는 문학 한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며 반색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김성곤 원장은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에서 인정받듯이 우리나라의 정신적인 부분 또한 세계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겠느냐"며 "이제는 노벨문학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고 있는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세계 문단에서 확인한 것"이라며 "모두가 함께 노력한다면 또 다른 성과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 맨부커상…'파이 이야기'도 수상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권위있는 상이다. 1969년 영국과 영연방국가들의 문학을 장려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영연방 국가 출신의 작가가 쓴 영어 소설을 대상으로 평론가, 학자, 소설가 등이 수상작을 선정한다. 인기 소설 만텔의 '파이 이야기'나 살만 루쉬디의 '한밤의 아이들'도 이 상을 수상했다. 2005년부터는 인터내셔널 부문을 만들어 2년에 한 번 영연방 이외의 국가들의 작가들에게 시상해왔다. 2009년 캐나다의 앨리스 먼로(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 2011년엔 미국의 필립 로스(1998년 퓰리처상 수상), 2013년 미국의 리디아 데이비스, 2015년 헝가리의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가 이 상을 탔다. 우승상금은 5만 파운드 (약 8000만원) 가량이며 작가와 번역가에게 나눠서 주어진다. 한강은 새롭게 바뀐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초대수상자가 됐다. --------------------------------------------------------------------------------- 소설가 한강…문장 속 시적 감성 풍부 한강은 1994년에 등단하여 꾸준히 활동을 해온 소설가다. 우리에게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와 '다산의 삶'으로 친숙한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다. 오빠인 한동림도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남편인 홍용희 경희사이버대학 교수는 문학평론가다. 대표적인 문인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에 빠져 자라났다고 스스로를 말한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직후인 1993년에 시인으로, 1994년에 소설가로 등단했고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소재로 다양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1970년대생 소설가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한강은 시인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기에 문장안에 시적인 감성이 녹아들어있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5년 중편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조원희 기자 cho.wonhee@koreadaily.com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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